정태춘, 박은옥
92년 장마, 종로에서
한사람의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뮤지션 생활을 하기도 어렵기도 하고
또 그런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빠순이들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머 정태춘이야 당시는 '운동권'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아이돌이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가'로서의 책임감 있는 수준의 완성도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팬이 있던 없던 간에
매우 어려운 일이고 뮤지션으로서 매우 가치있는 일이 된다.
바로 이 앨범이
이전 1978년부터 가수생활을 한 그에게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겠다.
군대에서 갓 제대한 풋내기 가수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이야기와 정처없이 방황하던 시절의 노래로 주목받게 되고
이후 10년이 지나서는 자신의 외부의 세계와 대화하고 투쟁하고 번민하며
말하자면 변증법적 발전을 이룩한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토록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을
소박하고 진지하게 노래로 만드는 가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마당에
그의 음악과 고민이 정점을 찍게 된다는 것도
같은 시대..물론 나이는 어리더라도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될 지경이다.
다시 말해 나는 정태춘의 빠돌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발매 당시 음반가게에서는 구할 수 없었고
대학가나 노조사무실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웃긴건 빽판 주제에 꽤 비쌌다. ^^;;
당시 직수입되던 외국음반 가격과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소니카셋트에서 이 음악을 듣는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음악을 듣는 순간
뛰어놀던 논두렁, 싸늘한 공기, 어둑어둑 지는 저녁, 밥먹으라고 부르던 할머니의 목소리,
함께 짚단을 태우며 담배를 피우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어린시절의 기억을 그가 들여다본것 마냥
그대로 회화적인 가사로 표현해준다.
이젠 이 노래가 나온지도 20년이 지났으니
그때의 감정이 이 노래와 같았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다.
내 기억이 이 노래에 교란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때 할아버지의 표정과
그 저녁의 모습은 분명하다.
노래같았다.
11월이란 시간은 왜 이리 옛날일이 자꾸만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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