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 주관과 객관의 차이

아무요 2010. 8. 11. 16:54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The thing about life is that one day you'll be dead.
데이비드 실즈 David Shields


국민학교 5-6학년쯤 되었을 때야 비로서 "객관적", "주관적"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일이 기억나는 이유는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설명이 촌스러웠던 것을 탓하기 보다 "객관적으로 봤을때" 그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였겠다.
물론 내가 남보다 무지하게 늦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진 않겠다.

그래서 "객관"과 "주관"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한건
중학교에 이르러서야 인가보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이 책은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이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른 형태가 죽음이고 삶은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대전제를
항상 염두해두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주관" 적인 이야기와 "객관"적인 측면으로 동시에 이야기해준다는 것이다.


주관이란 자신의 삶, 자신의 아버지의 98세의 삶, 틴에이저를 살고 있는 딸의 삶.
이와 같은 자신의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삶을 매우 사소한 시각으로 이야기를 하고
바로 이어서
관련된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쏟아놓는다.

20대 초반을 살던 시절에
니힐적인 친구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넌 날 이해 못해."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친구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왜 내가 널 이해 해야 하는데?"

그러나 30대를 훌쩍 넘어버린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도 없다.
30대에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오직 술집 여자밖에 없을거다.
사실 이젠 이야기안해도 다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너무 빤히 안다.

이 순간이 되고 나면 주관과 객관, 사생활과 공적인 생활, 나와 우리가 참 애매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둘의 간극은 이상하게 채워지지 않고 조금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주관적인 사회생활이라든가, 객관적인 개인 사생활이라든가.
나와 우리가 혼동되는, 나와 회사가 동일시 되는 그런 현상이라든가.


이런 혼란스런 지표들이 이 책에서는 명확하게 정리하고 금을 긋고 나타난다.
나와 우리, 가족, 사회생활, 노후와 청소년기의 생활들이
다양한 통계와 데이터를 통해서 다시 재단되기도 하고 부연되기도 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돌아보는 어떤 새로운 시각? 머 이런게 생길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오직 깨달은 것은
나도 남들과 별반 다를게 없더라...ㅋㅋㅋ


털은 한 달에 1.3센티미터쯤 자란다.
털 자라는 속도는 청년기에 가장 빠르고, 16세에서 24세 사이의 소녀들이 최고다.
낭만적인 사랑의 눈길을 보내는 연인, 갓난 아이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산모
코카인에 취한 사람의 뇌를 스캔해보면 결과가 놀랄만큼 엇비슷하다.
대니얼 맥닐에 따르면
'사람의 동공은 청년기에 최대 크기가 되는데 이는 틀림없이 연인을 꾀는 미끼이며
이후에는 60세가 될때까지 서서히 줄어든다.'
내털리에게 알려주면 "끝내주네요." 라고 말할만한 사실이다.
이야기해주었더니 정말 그렇게 대꾸했다.

책의 일부 내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