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를 말하다 - 큐레이터 캐서린 쿠의 예술가들 뒷담화.

아무요 2010. 5. 31. 18:43




 한 나라의 문화가 어느정도 수준에 가늠하는데 중요한 내용중에 하나는 바로 예술의 가치를 아는 인민이 얼마나 되는가가 중요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만큼 먹고 살만해지고, 자신의 삶의 가치와 내재적인 욕구에 대해서 어느정도 발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예술이란 도구는 매우 유용하다.
 그에 따라서 각종 예술을 소개하는, 혹은 구분짓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도 당연히 예술이 얼만큼 발전했는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척도가 되는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 공연기획자, 영화 평론가 및 기획자, 시나리오 작가, 큐레이터 등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도 말하자면 예술의 저변을 늘리는 일이 될 것이다.

 머 .
 당연한 이야기. 서두에 시작은 당연하게.

 전설의 큐레이터 "캐서린 쿠"가 밝히는 예술가들의 이야기.

 당연히 흥미 진진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난 캐서린 쿠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이름. 하나도 모른다.
 그들의 작품을 들여다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이 가지게 되는 의미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오직 전철에서 읽을 책이 똑, 떨어졌다는 이유로 집어 들었으나
예술을 논하는 책의 편집이..
 줄이 너무 길다.
책의 여백이 너무 좁다. 페이지를 열면 책에 가득 글씨가 차 있다. 가독성이 너무 떨어진다. 게다가 눈이 평소보다 더 양 옆으로 가야 해서 눈이 아프고 졸립기까지 하다.
 보통 한줄에 10단어에서 13단어까지 들어가 있다. 보통 책은 약 7-10단어정도 들어가는데 반해서.

 그래도 읽었다. 
 
 먼저 눈에 띈 사람은 미스 반 데 로에
 

  설레게 생긴 이름을 하고 이렇게 생긴 사람이다. 
 소련 공산당이나 게슈타포 총 책임자처럼 생긴 이 사람은 유명한 건축가이다.
 정치적 성향을 세세히 알 수 없지만 나찌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한다.
 독일의 유명한 건축학교의 바우하우스의 교장을 역임했으며 현대 건축의 백미라고 하는 판스워드주택 및 수많은 명건물을을 남긴 사람이라 한다. 

 

 아름답지 않은가?
수직으로 보와 기둥을 내리고 벽면은 모두 유리다.
집이란 공간이 안을 밖에서 격리시키기 위함이 보통의 구조인데
이 집은 안과 밖이 분리되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 주택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는 바로 집의 이름이다. "판스워드"주택.
가령 주택의 이름은 집 주인의 이름을 붙이기 마련이다. 동네 이름이라든가.
예상하셨듯이 이 집의 주인은 "판스워드" 씨다.
명망 높은 교수님이셨다나.
이 교수님은 미스 반데 로에가 훌륭한 건축가이기에 자신의 전원주택의 설계를 요청하셨단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은 집이 바로 저런 집.

교수님, 한주 힘들게 일을 하시고 주말에 편히 쉴, "안락"한 은신처, 휴식처를 원했던 교수님은
이제 샤워하고 발가벗은채 거실을 돌아다닐 수도 없다. 사실 거실도 없다. 그냥 원룸이다.
게다가 창문도 없다. ㅡ.ㅡ 유리창일뿐 열리지 않는다. 환기시설은 코딱지만큼만 허용된다.

이런 집을 원한게 아닌 교수님은 미스에게 소송을 걸고 오랜 법정투쟁을 하지만 결국 패소하고 전재산도 날리고
집도 날리고. 

 그러니 판스워드 교수님은 어디 학문활동이나 하실 수 있겠느냐는 거지. 결국 그 훌륭한 교수님의 이름은 저 집의 이름에서만 남아있다는 슬픈 이야기.

뒤에 얽힌 이야기는 한 독일 건축애호가가 저 집을 사들여서 설계 원형으로 복원하고 여지껏 소유하고 있었으나 자신이 죽을 날이 되자 주택 소재지인 일리노이즈 주에 이 집을 700만 달러에 사라고 했는데
 일리노이주 주정부는 예산 감축을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이 집은 소더비 경매에 나오게 되는데 어느 한 전화로 투찰한 사람이 이 집을 750만달러에 사가게 된다. 그 사람의 이름은 '판스워드하우스의 친구들'이란 개인들이 모여 돈을 모아 만든 집단으로 이 집을 보존하기 위한 성금으로 낙찰받았다는 이야기. 

이런 뒷담화의 이야기들이 소아마비를 앓으면서도 "인간승리"를 이끌어낸 고집스럽게 생긴 할머니의 후일담으로 책은 진행된다.

서두에 언급한 것과 같이 
예술의 안목을 키우는 것이 자신의 삶의 가치나 의미를 좀 더 발전적으로 형성할 수 있을 것이란 그런 막연한 기대속에서 이 책을 읽었지만, 세상 책 읽는것처럼 쉬우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그래도 이 책에서 처음 본 이사무 노구치, 마크 로스코, 알프리드 젠슨의 작품을 인터넷으로나마 찾아보고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여하튼 이것도 저것도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