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플라이프 (2011)

아무요 2016. 11. 19. 00:10

## 심플라이프 (2011)




권력과 삶의 본질간의 간극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가정이라고 하는 기본 테두리를 시작으로 다양한 그룹들로 관계망을 형성한다. 

그런 관계망속에서 사람을 기쁨을 얻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그런 다양한 감정들을 가정이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회귀할 땐 휴식이라는 타이틀이 부여된다. 

물론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휴식을 항상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겨진다.


가정, 가족이라는 공간은 신뢰라는 감정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고용인과 피고용인간의 권력 관계에서도 그런 신뢰의 감정은 충분히 형성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식모라고 하는 가장 가깝지만, 피고용인에게는 자아를 내려놓지 않은 이상 견디기 힘든 강도의 노동속에서 60년을 살아온 사람의 인생을 고용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누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시간의 두께가 어느정도인지를 정확하게 느끼지 못한채 살아가다 어느날 문득 깨닫게 된다. 

그런 봉사의 시간의 두께를 깨닫는 순간에 내가 누구의 희생이라는 거름으로 자라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고,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그러나 그 피고용인인의 인생에 대한 인식은 어디까지 고용인의 시각임을 항상 인지하고 있다. 이 영화는 딱 그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섣부르게 식모의 인생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 

그를 가족의 범주에 억지로 쑤셔 넣으려 하지 않는다. 

냉정할 정도로 영화는 고용인의 시각에 머무른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설정이긴 하다. 

그냥 이정도로 휴머니즘으로 대충 문대버리는 헐리웃 스타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차피 우린 그 사람의 인생안으로 겨우 그 정도밖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연출일 수도 있다. 


인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표현하는 선택을 허안화 감독이 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딱 그정도.


우리가 타인의 삶. 심지어 가족일지라도. 

그 사람이 지내온 시간의 두께와 질감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타인의 삶에 대한 태도는 여기까지. 


엽덕한의 연기도 딱 거기까지다. 더 깊이 들어가서 어렵게 생각하고 무겁게 느껴지지 않게 연기한다. 보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는지도 알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딱 적당한 연기를 보여준다. 


시종일관 관조하는 시각이라 영화가 텐션이 떨어지고, 드라마도 애매하긴 하다. 

그러나 결코 지루하다라고 하긴 뭐하고 그렇다고 너무 느슨해서 졸립기까지는 아니다. 

왜냐면 삶이 모습이 그러하고, 타인의 삶에 대한 나의 관심도 딱 그정도라고 여겨진다.